디-스탠스 

Di-Stance


김상소, 임윤묵, 장승근

Kim Sangso, Lim Yunmook, Jang Seungkeun


2026 / 02 / 12 - 2026 / 03  / 28

 

디-스탠스 Di-Stance


라흰 조은영 큐레이터


오늘의 만화방창의 시각 환경에서 우리 시야에 포착된 것들은 하나의 인과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다. 알고리즘이 끊임없이 제시하는 이미지, 길에서 마주치는 사물과 문장, 메신저 대화의 파편, 생활의 단면들은 어떠한 인과로 묶이지 않은 채, 21세기의 속도 위에서 서로 어긋난 채 병치되기 십상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각기 다른 장면들이 어떠한 간격으로 연결되거나 끊어지는가’가 먼저 감지되는 문화적 풍속도에서, 우리는 회화를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닌) 장면과 장면 사이의 간극을 유지한 채 관계가 발생하도록 만드는 장치로 다시 읽어봄 직하다. 《디-스탠스 Di-Stance》는 이 간극을 ‘거리 (distance)’의 문제로 예각화하되, 거리의 의미를 단순한 물리적 간격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전시명 ‘Di-Stance’는 Distance를 Di- (간격)와 Stance (태도)의 결로 나누어, 작품이 세계에 놓이는 순간 발생하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호출한다. 하나는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형성되는, 작가와 작품, 작품과 관객, 작품과 세계 사이의 간격이며, 다른 하나는 그러한 간격 앞에서 작가가 취하는 실천적 태도다. 요인즉 Di-Stance는 ‘거리’를 직접적으로 지시하면서도, 이 거리가 곧 관계를 성립시키는 방식이자 작품을 닫히지 않게 만드는 운용의 태도임을 제목에 내포한다.


이 과정에서 전시는 정치철학자인 아렌트 (Hannah Arendt)가 논한 ‘등장’ (혹은 나타남, Appearance)을 주요한 준거틀로 놓는다. 그의 논저를 검토하면 세계는 사적인 내면이 아니라 타자들과 공유되는 관계망에서만 성립하며, 어떤 말이나 행위는 공유의 장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더는 행위자에게 귀속되지 않는다. 작품이 놓이는 조건에서도 이 논리는 예외가 아니다. 작품은 공적인 장에 놓이는 즉시 다양한 시선과 오해, 우연한 접속을 거치며 의미가 분기하기 때문이다. 《디-스탠스》는 이와 같은 사유를 전시의 맥락에 적용함으로써, 작품이 ‘등장한 이후’의 상태를 거리와 경계의 조율이라는 회화적 조건으로 구체화한다. 이는 작품이 놓이는 거리와 경계의 설정에 따라 그것의 의미가 지속적으로 다기화된다는 사실을 환기하기 위함이다. 


김상소, 임윤묵, 장승근 세 참여 작가는 관객과의 거리를 상시로 조정하고, 장면들 사이의 간격을 닫지 않으며, 회화와 실재 사이의 경계를 유동적인 여건으로 다룸으로써 Di-Stance를 각자의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다. 이들이 구축하는 것은 완결된 메시지나 결론이 아니라, 의미가 발생하고 이동하는 조건으로서의 거리와 경계다. 따라서 Di-Stance는 ‘관객이 이해할 주제’이기보다, 작품이 전개되도록 만드는 본 전시의 운영 원리라 하겠다. 본 전시는 이러한 관계가 성립하는 장으로 회화를 제시하여, 관객이 타자와 공유되는 ‘사이’에서 의미가 갈라지고 확장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한다.


# 김상소


김상소에게 회화는 ‘본 것’과 ‘보이는 것’의 표면이 포괄하지 못하는, 현실 저변의 보이지 않는 기미를 탐지하는 일이다. 그는 이 비가시적인 것을 보려는 일념으로 소설, 연극, 영화 등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픽션의 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회화로 옮기는 방법을 실험해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회화를 픽션의 토르소 (몸통)로 일부만 남겨 관객이 결락을 상상하게 만들기도 했으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의 체계에서 회화가 끝내 붙잡을 수 있는 단위는 (정체성이 바뀔 수 있는) 인물이 아닌 ‘장면’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근래의 <Short talks> 시리즈는 이 같은 인식을 토대로, 작가가 일상에서 직접 포착한 장면을 짧은 단위로 호출하면서도 이를 단일한 서사로 봉합하지 않고 간격을 남긴 채 배치하는 작업이다. 말하자면 ‘talk’는 설명을 늘어놓지 않고도 관객의 읽기를 점화하는 최소한의 발화인데, 이를 위해 작가는 블라인드 드로잉, 트레이싱, 변형 캔버스 같은 회화적 장치를 통해 단서를 남기되 절제하는 방식으로 여백의 밀도를 조율한다. 또한 이 연작의 연장선에 놓인 <Solid>는 그러한 발화의 문법을 입체로 전치해 변주한 작업군이다. <Solid>는 특정 문장을 MDF, 나무, 철, 양초 등의 물질에 새겨 ‘짧은 말’을 사건 (있음)으로 성립시키고, 회화의 간격이 수행하던 일을 물질의 실제성으로 이어받아, 그림의 조건을 ‘보이게 하기’에서 ‘있게 하기’로 확장한다.


한편 김상소의 작업에 나타나는 대상들, 가령 길가의 흙더미와 부서진 화분, 건어물 시장의 굴비, 알고리즘에 유입된 기이한 운동 이미지, 우연히 펼친 만화책의 장면, 운전 길에 손에 쥔 채 먹은 햄버거 등은 그 자체로 완결된 서사를 갖지 않는다. 작가는 이 파편들을 비스듬히 병치해 장면들이 서로 ‘연결될 수도 있음’을 암시할 뿐이다. 이는 무엇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설명하기보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거리가 감각되도록 화면의 조건을 마련함으로써 의미가 단정되지도, 단서 없이 흩어지지도 않는 적정의 경계를 탐색하기 위함이다. 그러면 끝내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 오히려 한층 자유로운 ‘언어’로 작용하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그의 화면이 겨냥하는 바가 고착된 의미가 아니라 작품이 등장한 이후에 의미를 분기하게 만드는 조건 자체에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김상소는 이러한 조건을 전제로 관계를 만들면서도 의미를 닫지 않게 거리를 운용하는 Di-Stance의 태도를 견지하며, 관객의 읽기를 (의도와 어긋나는 해석까지) 대화의 한 양상으로 수용하고 있다.


# 임윤묵


생각을 과하게 술회하는 언어는 역설적이게도 생각이 지닌 넓이와 미묘한 기류를 이따금 손상시킨다. 반면 회화는 생각을 가능한 한 훼손하지 않고 꺼내어 놓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임윤묵이 이해하는 회화는 이처럼 결론을 서둘러 확정하기보다, 화면에 남은 인상이 시간에 따라 누적되면서 하나의 무늬로 드러나게끔 여지를 남기는 매체다. 그리고 작가의 이러한 회화관은 ‘무엇을 왜 그리는가’를 물으며 대상을 선택한 관점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본 것과 와닿은 것’을 그리는 실천 자체를 작업의 근거로 삼는 태도로 이어진다. 2022년 즈음 그가 접한 ‘양탄자 무늬’의 비유는 당위의 논리 대신, 일상에 주관적 시선을 얹는 ‘그리기의 즐거움’만으로 작업에 임해도 된다는 판단을 굳혀 준 계기다. 목적과 효용이 아닌 심미적 만족을 따라 짜인 양탄자의 무늬가 (과정 중에는 흐릿하다가도) 완성된 뒤에야 비로소 선명해지듯, 작가 역시 그리기의 행위를 다만 축적하는 데에서 회화의 근거를 발견한 것이다. 


한편 임윤묵은 그리기를 단순하게 거듭할수록 감각이 화면에 더욱 짙게 잔류함을 깨달았다. 이 흔적이 회화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한 그는 대상의 재현을 넘어, 대상과 대상 및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생성되는 구조와 흐름, 곧 관계가 성립하는 ‘사이’에 작업의 초점을 두게 된다. 가령 양탄자의 씨실과 날실이 방향만 달리한 채 하나의 직물을 이루듯, 그는 (거의 같은 성격을 지녔음에도) 별개의 것으로 인식되던 일상의 미세한 순간들을 짝지어 그리는 것이다. 특히 본 전시에서 작가는 쌍을 이루는 작업들이 서로를 비추며 잔상을 남기게 함으로써, 관객이 이 느슨한 맞물림을 따라 관계를 더듬어 엮도록 유도한다. 이때 관건은 ‘설명되지 않은 간격’이다. 이는 관계가 생성될 거리를 남겨 단정과 결론으로의 수렴을 늦추는 까닭이다. 더불어 이 거리의 운용은 재료와 제스처로 뒷받침된다. 밑칠하지 않은 리넨의 흡수성과 기름기를 덜어낸 유화, 반복되는 짧은 붓 터치는 순간적인 인상과 감각을 미세한 차이로 붙잡아 두어, 유사한 장면들이 과도한 설명 없이도 서로의 연결을 드러낼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의도에서 비켜난 해석조차도 여기에서는 실패가 아니라 관계가 생겨나는 징후로 남는다. 그렇다면 임윤묵의 Di-Stance는 긴장을 고조시키기보다 여지를 열어두는 완만한 거리로, 관계가 생성되는 ‘사이’의 구조를 섬세하게 조직하는 것이 아닐까.


# 장승근


장승근의 회화는 주거와 작업이 한 공간에 물리적으로 포개지는 생활 조건에서 출발했다. 그는 작업이 삶을 잠식할 때 밀려오는 당혹감과 고립을 외면하지 않고, 이를 감내하려는 태도를 조형 어법으로 번역한다. 이 태도는 거창한 사건을 호출하기에 앞서, 일상에 배어든 사물과 장면에 착목하는 것으로 구현되었다. 일상의 감각이 작업에 의해 좌우되면서, 작가의 시선은 ‘계속해서 눈앞에 존재하는 것들’로 자연스레 향했기 때문이다. 매일 마주치는 도구와 쌓여가는 그림들, 그 틈에서 증식하는 공상은 그렇게 그의 작업을 지탱하는 기저가 됐다. 말하자면 장승근의 회화는 대상의 구도, 색채, 시점 등을 조율하는 기제이기보다, 창작의 긴장과 그에 반응하는 실존적 태도가 드러나는 장에 가깝다. 방향을 확신하지 못한 채 주저앉기 쉬운 그리기의 불확실성은 따라서 장승근에게 결함이 아니다. 그는 투박하고 너절한 생의 마찰을 회피하지 않고 견디는 일이 삶을 진실로 작동케 한다는 것을 믿기에, (좌절과 불시착이 반복되는) 그리기의 난국은 오히려 작업을 성립시키는 토대가 된다. 그리고 작가가 작업의 근저로 삼는 곤경의 내력과 위태로움, 투박함과 해학 등은 그러한 토대가 화면에 드러나는 양상이다.


장승근은 특히 2024년 무렵 집과 작업실이 합쳐진 공간으로 생활 기반을 옮기면서 선과 붓질의 리듬을 중심으로 화면을 재조직하기 시작했고, 이는 본 전시의 출품작들에서도 밀도 높게 가시화된다. 가령 과거 그가 얇고 빠른 선으로 대상을 밀어내듯 표현했다면, 근작에서는 물감을 두껍게 머금은 붓이 둔한 호흡으로 화면을 가른다. 더불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지우지 않고 덧그리는 근래의 방식은 요철을 가감 없이 노출하여, 축적된 표면을 매개로 시선을 화면 전체의 장으로 이동시킨다. 장승근의 화면에는 누런 장판 같은 땅과 지평선, 하늘이 자주 등장하는데, 땅에는 현실의 권태가, 하늘에는 회화적 즐거움이 깃든 듯한 두 공간의 대비는 화면에 긴장을 부여한다. 여기에는 헛헛한 붓질과 그림 도구들, 공상적 풍경 등이 올려지면서 일상과 내면의 경계가 스며드는 지점을 만든다. 이 접점은 각 대상의 자리와 거리를 조정하는 ‘경계의 처리’를 필연적으로 요했는데, 여기서 특기할 것은 작가가 틈새를 지닌 어설픈 윤곽선으로 형상을 둘러 대상들의 경계를 존중하면서도, 허술한 골격으로써 도리어 내외부 사이의 상호작용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말의 추임새처럼 어눌하게 잔류하는 붓 터치 또한 관객과 화면 사이의 간격을 교란하여 의미가 닫히는 것을 유예한다. 그의 화면이 결국 정돈된 결론을 미룬 채, 유보된 간극만을 남기는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다. 장승근은 이렇듯 작업 안팎을 가로지르는 경계의 불안정성을 인내하며 Di-Stance를 모색하고, (작품의 ‘등장 이후’에 따른) 오해와 오류, 거리의 위태로움을 인내하는 윤리를 회화의 형식으로 정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