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의 다섯 번째 계절
Fifth Season in the Room
정우원 개인전
Woowon Jung
2021 / 6 / 16 - 2021 / 7 / 31
물질의 오합지중에서 예술적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라흰갤러리 큐레이터 조은영
# 인생은 짧고, 기예는 길다.
“인생은 짧고 기예는 길다 (Vita brevis, ars longa).” 의성 醫聖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저 유명한 격언은 단 네 개의 낱말만으로 뇌리를 강렬하게 파고든다. 지극히 간결한 이 교훈적 경구는 인생과 기예 사이의 비대칭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만 오를 수 있는 예술의 경지에 비해, 인간의 삶은 덧없이 짧고 빠듯하다는 의미이다. 육신의 상태란 결국 시간의 지속적인 흐름 안에 놓여있는 까닭이다. 과연 역사의 흐름을 전망해 보면, ‘인생은 짧고 기예는 길다’는 시간의 치명적인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온 노력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짐작건대 의사로서 히포크라테스에게 주어진 사명이 짧은 생애를 연장케 하는 것이었다면, 작가 정우원은 또 다른 목적의식적인 행위를 통해 시간의 치명적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사실 너무나 많은 예술가들이 ‘시간’을 주제로 예술적 상상력을 동원해왔던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필멸의 인간이 시간을 다루는 작품을 후대에 남길 때, 비로소 시간의 절대적인 지배를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디 로봇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이자 예술가인 정우원 작가에게, 시간은 그가 쌓아온 창작의 궤적에서 한층 중추적인 개념이 된다. ‘움직임’의 원리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어떤 것의 움직임이란 시공간적 현상으로서, 시간의 전제 아래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순간들의 결합을 통해서만 포착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움직임이 자주 동원되는 정우원 작가의 작업에서, 시간의 흐름은 감상자에게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토대가 되어 왔다.
라흰갤러리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 또한 큰 맥락에서 보면 움직임이라는 시간의 원근을 조성하고 있다. <방 안의 다섯 번째 계절>이라는 전시 제목은 이를 단적으로 반영한다. 하지만 작가의 기존 작업과 달리, 본 전시의 주안점은 물리적인 움직임이나 형태의 변화에 있지 않다. 요컨대 <방 안의 다섯 번째 계절>은 물질, 사물, 오브제와 사람 사이에서 시간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쌍방향 소통 interaction’에 관한 것이다.
# 움직임의 달인이 선보이는 생각의 연금술
바탕이 엔지니어인 정우원 작가는 만드는 것을 좋아해 로봇 공학을 공부했으나, 제대 후 떠난 유럽여행에서 그간 인식하지 못했던 예술가의 감성을 발견했다. 클림트의 <키스 The Kiss>가 그에게 일종의 스탕달 신드롬을 안겨주었다고 하는데, 여하간 작가는 이렇게 영국왕립예술학교 (RCA)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엔지니어링과 예술의 영역에서 정우원 작가는 자신만의 길을 오래도록 찾지 못했다. 정우원 작가의 디자인은 공학 기술을 근거로 하는데, 우선 기계적인 요소에 완벽하고자 했던 욕심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았다. 무엇보다 작가의 작업들을 실제적인 움직임을 적용한 조형예술, 즉 키네틱 아트 (kinetic art)의 개념으로 단순하게 결론 짓는 외부의 평가가 그의 창조성에 자꾸만 한계를 그어 놓았다.
정우원 작가의 작업이 기계의 움직임을 예술적으로 승인하고, 현실의 시공간에서 움직임의 실재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작가는 키네틱 아트라는 표현을 지양하며, 본인은 그저 ‘작업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자신 있게 단언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작가만의 생각을 시각화하는 작업으로서, 다만 여기에 기계적인 요소가 접목될 뿐이다. 더 나아가 그가 추구하는 움직임이란 지속적인 변화를 매개로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라 하겠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작업, 간단하게 버튼만 누르는 작업이 아니다. 시적인 표현,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 움직임으로써 감상자와 감정적으로 교류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정이 드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작가 정우원은 그의 예술을 움직임이 더해진 ‘인터랙션 아트’로 정의한다. 작가가 전달하려는 개념을 풀어내기 위해, 물질과 사람 사이에서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전시 <방 안의 다섯 번째 계절>은 정우원 작가가 개념 표현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 즉 파인 아트 (fine art)를 향해 내딛는 진일보라 하여도 어색하지 않다. 움직임을 토대로 시간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그가, 이제는 말이나 물리적 행동보다 강력한 생각이 마치 연금술의 기능을 수행하듯 나래를 펼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 직선적 시간을 초월한 몰입의 순간, 카이로스의 시간
부품 하나하나의 미학까지 세심하게 놓치지 않았던 작가였지만, 지금부터의 창작의 노정은 그에게 전연 새로운 차원의 것이다. 기계적인 요소에 통달한 작가이기에, 이번에는 다소 조야해 보이는 오브제의 오합지중일지라도 개념과 생각을 표현하여 자기만의 ‘예술적 유토피아’를 건설하기에 적합하다면 과감히 뛰어들기로 한다. 그래서 정우원 작가는 갖가지 매체로 이루어진 물질들을 라흰의 공간 곳곳에 설치하고, 빛과 향과 형태의 변화가 가져오는 우연적인 효과를 창출하여 미증유한 ‘시간의 노정’을 만들어냈다. 전례 없는 새로운 시간, 바로 ‘다섯 번째 계절’이다.
작업의 계기는 마찬가지로 ‘인생은 짧고 기예는 길다’에서 시작한다. 작가 또한 인간의 삶이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에 묶여 있음을 시인하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우원 작가가 마련하려는 돌파구는 시계의 단조롭고 직선적인 째깍거림에 반하는, 또 다른 시간의 흐름을 창조하는 데에 있다. 새로운 시간성이 창조되는 이 순간, 나는 여기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본다.
고대로부터 시간은 두 개의 상이한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첫 번째 개념인 크로노스의 시간은 측정할 수 있는 시간 단위로, 시계의 침과 함께 소모되어 우리를 늙고 죽게 만든다. 크로노스적 규범이 이처럼 지나가 버리면 그만인 시간이기에, 예술가의 영혼은 과거와 현재, 미래 사이에서 잃어버린 고리를 되찾을 수 있는 몰입의 순간에 목말라 있다. 그것이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직선적인 시간을 초월하여 현재의 이 시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상대적인 시간. 그러므로 카이로스를 포착하여 자유를 만끽하는 인간은 절대적 시간을 거스르며 상상력을 펼친다. 시간의 기준은 주관적이고, 어떠한 흐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삶이 펼쳐진다고 믿는 정우원 작가의 관념은 이와 같은 카이로스의 시간 개념과 매우 닮았다.
한편 <방 안의 다섯 번째 계절>이 개최되는 라흰갤러리의 구조는 작가가 설정하려는 예술적 유토피아에 단단하게 힘을 보태준다. 층마다 공간 개념이 명확하게 나뉨으로써, 감상자가 거쳐 지나가는 모든 길이 다섯 번째 계절을 여행하는 통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건물의 내부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없으니, 작가는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다채로운 기분과 시간, 계절의 모든 것을 구현해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라흰의 공간은 마침내 카이로스의 시간적 흐름에 따라 완성되는 상호 대화적 환경으로 승화한다. 말하자면 움직이는 모든 형태와 감각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하나가 되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총체로서 마음에 침투하고 있음을 느낄 때, 여러분은 당신의 세계에 극적인 전환을 가져오는 순간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공간에 계절을 만들다. Create seasons in the room>
정우원
우리은 계절의 변화에서 시간의 흐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활하기 위한 집, 방이라는 공간은 건물 밖의 변화에 최대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공간은 기본적으로 모든 것들의 흐름을 최대한 느리게 가도록 되어 있다. 즉 우리는 모든것이 멈추어 있는 공간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만약 집안에 계절의 흐름을 만든다면 어떠게 표현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작가는 집안에 존재하는 요소들을 이용하여 공간에 계절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 다섯번째 계절을 집안에 만들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공간에 작은 움직임, 즉 흐름이 존재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우리의 삶은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날수 없다. 하지만 작가는, 시간의 기준은 상대적인 것이며 어떠한 흐름속에서 삶을 살아 갈것인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 질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시간의 흐름에 대해 탐구하고 이것을 통해 작가가 보고 믿는 것을 이야기 하려 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색의 변화로 흐름을 읽고, 향의 흐름으로 시간의 변화를 이야기 하며, 형태의 변화를 통해 '다른 흐름'을 공간에 만들어 자신의 시간의 기준을 만들기위한 도구로 사용하려 한다.